1. 독점수입업체의 꼼수
바코드 역추적해 납품 차단도
미국 유명 매트리스 브랜드 실리(Sealy)사의 제품을 병행수입하는 A업체 대표는 지난해 3월 미국 파트너 업체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A업체에 계속 제품을 납품하면 공급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실리 본사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A업체가 병행수입해서 파는 제품의 바코드 번호를 실리코리아(한국지사)가 역추적해 본사로 하여금 공급 루트를 차단시킨 것. 결국 A업체는 다른 공급 루트를 찾을 때까지 한동안 사업에 차질을 빚어야 했다.
병행수입 활성화에 가장 불만이 많은 곳은 국내 독점수입업체다. 병행수입업체가 같은 글로벌 브랜드 제품을 많게는 50% 이상 저렴하게 판매하니 도저히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병행수입제품의 할인 폭만큼 그간 폭리를 취해온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따가운 시선도 속 아프다. 때문에 독점수입업체들은 병행수입업체가 정품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외 본사에 압력을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병행수입을 하면 민형사상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정보를 자사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놓기도 한다.
독점수입업체들의 방해로 병행수입업체들은 물량을 못 구해서 난리다. 지난해 말 CJ오클락이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캐나다구스를 병행수입해서 판매하기로 했다가 물량 확보에 실패, 결국 주문을 취소하고 고객 사과문을 올린 게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당시 CJ오클락은 100만원대에 달하는 캐나다구스 엑스페디션을 최대 40만원 싸게 팔겠다며 공동구매자를 모았지만, 주문량의 20%밖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캐나다구스 공식수입업체가 해외 본사에 항의해 CJ오클락에 주기로 한 물량을 취소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짝퉁’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든 통관보류제도를 악용하는 업체도 있다. 통관보류제도는 지적재산권자가 디자인 등의 특허를 침해한 제품의 국내 반입 금지를 요청하면 10일에서 최대 수개월까지 통관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지만 병행수입제품에 대한 독점수입권자의 견제 수단으로 오용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에트로’ 가방을 병행수입하는 B업체의 김형식 사장(가명)은 2년 전 병행수입 과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에트로의 국내 독점수입업체가 “B사 제품이 ‘가품’으로 의심된다”며 관세청에 통관보류를 신청했다. 김 사장은 해외 멀티숍의 파트너를 통해 직접 들여왔기 때문에 진품이라고 확신했지만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세관에선 통관 조건으로 제품 가격의 150%를 요구했고, 영세사업자인 김 사장은 결국 해당 제품 병행수입을 포기해야 했다.
2. 낮은 소비자 신뢰도
짝퉁·AS 부실 우려 높아
‘병행수입제품은 가품이 많다’는 부정적인 소비자 인식도 병행수입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실제 중국 등에서 만들어진 가품을 밀수로 들여오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 들여온 제품까지 도매금으로 넘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수입차 부품을 병행수입하는 정제니 위드베플 대표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국내 자동차공업사에서 수입차 부품을 교체하려던 한 40대 고객 김 모 씨는 400만원이란 견적에 놀라 위드베플에 구매대행을 요청했다. 정 대표가 병행수입한 해당 제품 가격은 34만원에 불과했다. 공임이 제외된 가격임을 감안해도 공업사 측이 수백만원에 달하는 바가지를 씌우려 한 것으로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 씨는 “수입차 부품이 너무 싸서 의심스럽다”며 주문을 취소했다. 정 대표는 “병행수입이 가품이 많은 탓도 있지만 공식수입업체들이 하도 폭리를 취하다 보니 적정한 가격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병행수입제품은 AS(사후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인식도 해소해야 한다. 지난해 말 직장인 한승철 씨(가명)는 병행수입으로 구입한 디젤 시계가 고장 나 애를 태웠다. 백화점가 80만원대인 시계를 병행수입으로 반값에 구입했지만 AS를 받을 길이 없어 막막했기 때문. 한 씨는 디젤 한국지사인 파슬코리아에 전화해 유상 AS를 문의했지만 병행수입제품에 대해선 유상수리도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쪽에선 AS가 다소 부실하더라도 병행수입을 통한 가격 인하 혜택이 더 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행수입제품이 독점수입업체보다 많게는 수십만원 저렴한 만큼 AS 부실에 관한 리스크는 소비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것. 의류 병행수입업을 5년간 해온 이진현 씨(가명)는 “고가의 명품이나 자동차 등은 물론 정식 AS를 받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일반 의류나 잡화도 공식수입업체와 같은 수준의 AS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며 “요즘은 병행수입업체도 전담 AS업체 지정 등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또 설령 AS가 약해도 가격 메리트를 감안하면 병행수입이 훨씬 실속 있는 소비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3. 정부 지원 정책 미비
개별소비세 역차별 우려
정부의 대표적인 병행수입 지원 제도는 통관인증제가 있다. 세관을 정식 통과한 병행수입제품에 한해 통관표지 QR코드를 붙이는 제도로, 밀수로 들어온 가품들과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1차적인 가품 거름망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업계에선 까다로운 선정 기준 탓에 진입 장벽이 높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최근 2년 내 연 1회 이상 병행수입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초보자를 위한 또 다른 팁
➊ 쉽게 조달 가능한 것
처음 병행수입을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본이 영세하기 마련. 따라서 단가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쉽게 조달 가능한 제품이 좋다. 수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유통 기한이 길거나, 유행을 비교적 덜 타는 제품이 유리하다.
➋ 명품은 위험
명품의 경우 3~6개월마다 한 번씩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조달하기 힘들다는 위험이 있다. 특히 샤넬, 루이비통 같은 인기 명품들은 다품종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물량 확보가 어려울 뿐더러 가품일 가능성도 높다.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현재 한국에서 인기 있는 상품을 취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수시로 트렌드를 잘 파악해야 한다.
➌ 절차 복잡한 제품 피해야
통관 후 절차가 까다로운 제품은 가급적 처음엔 피하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품이다. 화장품은 세관을 통과해도 식약처를 통해 다시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화장품을 병행수입해서 판매하긴 제도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나도 병행수입해볼까
진품 안정적 확보가 관건
병행수입 사업을 시작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제품을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중요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해외에 직접 가서 현지 거래선을 직접 뚫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현지 유통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병행수입업체들은 보통 멀티숍(하나의 매장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나, 스탁업체(창고형 매장)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다. 멀티숍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거의 100% 진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스탁업체에는 진품도 있지만, 가품제조업체들이 생산하는 가품도 함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현지 거래선을 잘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병행수입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인적 네트워크 없이 해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칫 가품을 수입할 우려도 있다. 해외 공급업자들도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에게 제품을 잘 공급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은 국내 병행수입 도매업체로부터 상품을 공급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창업자가 특정 브랜드를 취급하려고 한다면 해당 브랜드를 도매로 공급하는 국내 업체를 찾아 상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유통 과정을 한 단계 더 거치기 때문에 해외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보다는 다소 비싸다.
이 방법도 완벽하진 않다. 국내 병행수입 도매업체들 중 일부의 유통 경로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 경로가 폐쇄적이다 보니 가품을 취급해도 창업자 입장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따라서 관세청에 문의하거나, 병행수입협회를 통해 보다 투명한 도매 공급처를 찾아보는 것이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다.
물건을 공급받았으면 이제 판매해야 한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개설해 팔거나, 오픈마켓, 백화점 쇼핑몰 등에 입점하는 방법이 있다. 사업자 등록증만 있으면 오픈마켓에는 비교적 쉽게 입점할 수 있다. 백화점이나 홈쇼핑업체들이 운영하는 병행수입 쇼핑몰은 절차가 까다롭다. 업력이나 규모, 신뢰도가 어느 정도 있어야 입점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한국서 돈 벌어 ‘먹튀’ 하는 독점수입업체들
루이비통·나이키·시슬리·버버리 대부분 낙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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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독점수입업체들. 국내 수입품 사용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매출과 이익도 증가 추세다. 영리 추구는 당연히 기업이 중요시하는 덕목.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지역 내 기부와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외국 지사들의 사회공헌 성적표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낙제점’에 가깝다.
버버리코리아의 2012년 매출액은 2281억원, 영업이익은 210억원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고작 900만원이다. 매출액의 0.01%도 안 된다. 불가리코리아도 2012년 매출액 794억원, 영업이익 97억원, 당기순이익 79억원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없다. 이탈리아의 고급 패션 브랜드 ‘펜디’의 한국 총판 펜디코리아, 페라가모코리아, 스와치그룹코리아의 2012년 기부금 또한 제로다. 스포츠 용품 양대 산맥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국내 지사도 기부에 인색하긴 마찬가지. 나이키 공식수입업체 나이키스포츠의 2012년 기부금은 없다. 아디다스코리아의 기부금도 2011년 1억2000만원에서 2012년 660만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외국 지사들은 사회공헌활동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국내에서 번 돈을 한국 사회에 재투자하기는커녕 오히려 막대한 이익금을 배당금으로 지급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불가리코리아는 2012년 당기순이익의 90%에 가까운 70억원을 배당금으로 썼다. 페라가모코리아는 2011년 당기순이익(164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7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2011년 매출액 4974억원, 영업이익 575억원, 당기순이익 449억원을 냈다. 하지만 국내 투자에는 역시 인색했다. 매출의 1%도 기부금으로 내지 않았지만, 프랑스 본사에는 순이익의 대부분인 40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 시슬리코리아도 마찬가지. 2011년 시슬리코리아는 본사에 당기순이익(49억원)의 90%가 넘는 45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일부 해외 지사들은 사회공헌과 국내 재투자가 없다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유한회사로 전환, 실적 공개조차 꺼리고 있다. 국회는 최근 유한회사에 대한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부 해외 명품 기업들은 고압적인 마케팅 태도와 AS 문제 등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3년간 해외 유명 브랜드 20개사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1437건에 달한다.
버버리(328건), 구찌(248건), 프라다(220건), 롤렉스(207건), 루이비통(108건) 등의 순으로 많았다. AS 관련 불만은 구찌 21건, 루이비통 13건, 프라다·페라가모 9건 등 모두 103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AS 관련 피해가 구제된 사례는 구찌 3건, 루이비통 3건, 페라가모 2건, 프라다 1건에 불과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